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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다운 벗의 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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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656
내용


어떤 마을에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아들이 벗들과 사귀기를 좋아하여 날마다 문밖으로 나가 벗들과 어울리면서 놀았는데,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술에 잔뜩 취해 돌아왔다. 가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 있을 적에는 벗들이 집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자들이 아주 많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였다. 

“저들은 누구냐?” 
“저의 벗들입니다.” 
“벗을 사귀기는 어려운 법인데, 벗이 그렇게도 많단 말인가?” 


어느 날 아버지가 돼지를 죽이고서 거적으로 싼 다음, 아들에게, 


“네가 벗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가 보자.”


하고는, 또, 


“이것을 짊어지고서 앞장서라. 네가 가장 믿을 만한 벗이 누구냐?”


하였다. 아들이 돼지를 짊어지고 앞장서서 자신이 가장 믿을 만한 벗의 집으로 가 벗에게, 


“내가 오늘 저녁에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다급한 맘에 지금 시체를 짊어지고 널 찾아왔다.” 


하자, 그 벗이, 


“그런가? 집 안으로 들어가서 함께 시체를 처리하자.” 


하였다. 그러나 한 식경이 지나도록 그 집 앞에 서 있었는데도 그 벗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소리쳐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면서, 


“허허, 너 혼자서 처리해야겠구나.” 


하였다. 아들이 그 집을 떠나와 다른 집을 찾아가 그 벗에게 고하기를,


 “내가 오늘 저녁에 사람을 죽이고서 다급하여 너를 찾아왔다. 너와 함께 시체를 처리했으면 한다.” 


하자, 그 벗이 소리를 치면서 말하기를, 


“살인이 얼마나 큰일인가. 속히 떠나가라. 머뭇대면 나에게 누를 끼칠 것이다.” 


하였다. 그러자 아버지가 다시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허허, 너 혼자서 처리해야겠구나.” 


아들이 또다시 다른 벗을 찾아갔다. 시체를 짊어지고서 서너 집을 찾아갔으나, 모두 만나주지 않았다. 마음은 허탈하고 짐은 더욱 무거워졌다. 날이 장차 밝으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너의 벗이 이제 더는 없는가?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찾아가 보자.” 


하였다. 아버지가 그 사람의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고는 아들이 그의 벗들에게 고했던 대로 말해 주었다. 그 사람이 깜짝 놀라면서, 


“잠깐만 있으시게. 조금 있으면 날이 밝을 것이네.” 


하였다. 그리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 삽을 가지고 나와 안방의 구들을 들어내려고 하면서 아버지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자네도 나를 도와 구들을 들어내시게.” 


하자, 아버지가 말하기를,


“그러지 마시게. 구들을 들어낼 필요 없네.” 


라고 하고는, 거적으로 싼 것을 가리키면서, 


“저것은 죽은 돼지네.” 


하였다. 그리고는 아들의 일을 그 사람에게 말해 주었다. 그 사람이 삽을 내려놓고 웃었다. 드디어 술을 사와 그 돼지고기를 안주 삼아 먹고서 돌아왔다. 아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면서 후회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다시는 벗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里有父子同宮而居者。其子喜結友。日出門與友遊。出必醉飽而反。或時不出。友至蹝履欵門者甚衆。父曰是皆何如人。曰友也。曰友難而友多至此乎。一日父殺猪席褁。而謂其子曰觀於而所友者。曰擔且前。而所最信友誰也。前至其所最信友之家。告其友曰吾殺人急。今負以來在此。友曰諾。且入圖之。立食頃不出。呼又不應。曰咄獨爾乎哉。去而至他。告其友曰吾今晩殺人急。輒來與若謀。友咜曰此何如事。速去。遅將累我。曰咄獨爾乎哉。又去而之他。凡擔而走三四家。率皆不見接。意無聊。其擔益重。曙皷動。父曰而友盡乎。吾有相識人在。遂往叩其人之門而告其人。如其子之告其友者之爲。其人驚曰止。東方且白矣。入取鍤。且毁其卧室之堗。顧曰助我。曰毋。堗不必毁也。指席褁者曰猪也。因告其人其子事。其人投鍤而笑。遂相與市酒啖肉而去。其子大慙悔。歸而不復敢談友。
 
- 김상정 (金相定, 1722~1788), 「우난(友難)」, 『석당유고(石堂遺稿)』




해 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6대손으로, 정조 때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인물인 석당(石堂) 김상정(金相定)이 지은 「우난(友難)」이라는 글이다. ‘우난’은 참다운 벗을 얻기는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고, 참다운 벗이 어떤 것이냐에 대한 의논이기도 하다. 이 글을 보면, 매일같이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노는 아들의 친구들은, 정작 아들이 어려운 처지에 빠졌을 때에는 모두 등을 돌렸다. 이에 반해 아버지의 친구는 살인이라는 엄청난 일에 대해서조차 등을 돌리지 않고 도움을 주려고 하였다.

  살인은 사람이 범할 수 있는 범죄 중에 가장 중한 범죄이다. 그 범죄를 은폐해 주는 것도 아주 중한 범죄이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친구는 벗을 위해서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그렇게 하였다. 어째서 그랬을까? 벗에 대한 미더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자신의 벗이 올바르지 않은 일은 결단코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평소 행실이 벗에게 미더움을 주지 못하였다면, 아버지의 친구는 결단코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 간에 마음을 알아주는 벗을 뜻하는 말이다. 옛날 중국 춘추시대 때 초나라에 금(琴)을 잘 뜯기로 유명한 백아(伯牙)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종자기(鍾子期)라는 벗이 있었다. 백아가 높이 솟은 산을 생각하면서 금을 뜯으면, 종자기는 눈을 지그시 감고 ‘좋고도 좋구나. 높은 산이 우뚝하고 우뚝하도다.’ 하였다. 백아가 흘러가는 물을 상상하면서 금을 뜯으면, 종자기는 그 소리를 감상하다가 ‘좋고도 좋구나. 강물이 넘실넘실 흘러가누나.’ 하였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다시는 금을 뜯지 않았다.

  오늘날과 같이 서로 간에 온갖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번복(翻覆)이 무상한 세상에서는, 백아와 종자기와 같은 참다운 벗의 도는 기대하기가 힘들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세상에서 참다운 벗의 도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그저 함께 어울려 놀기만 하는 벗만 있고,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참다운 벗이 한 사람도 없다면, 이 얼마나 삭막한 삶이겠는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지고지순한 것이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잘못하면 자녀의 앞길을 망치게 된다. 친구 간의 의리도 마찬가지다. 친구 간의 올바르게 맺어진 굳건한 의리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올바르지 않은 도로 맺어진 친구 간의 의리는, 자신이 발전해 나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과 친구를 불행하게 만들고,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치기까지 한다.

사람은 혼자서는 설 수가 없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지만 설 수가 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참다운 벗이 필요하다. 참다운 벗이라는 것은 꼭 같은 또래의 친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면 나이 차이나 남녀의 성별과 관계없이 참다운 벗의 관계를 맺을 수가 있다. 그런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참다운 벗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참다운 벗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서로 간에 관계를 맺어야만 참다운 벗을 얻을 수가 있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은 학업을 핑계로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아니 사귈 틈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인들은 생활을 꾸려나가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를 만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는 참다운 벗을 얻을 수 없다. 제아무리 학업이 중하고 생활에 바빠도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 친구를 만나 마음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참다운 벗을 얻을 수 있다.

  참다운 벗은 자신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참다운 벗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참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올바르지 않으면 자신의 주위에는 올바르지 않은 사람만 몰려든다. 자신이 이해관계를 따져 상대방을 대하면, 상대방 역시 이해관계를 따져 자신을 대한다. 자신이 진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면 상대방도 역시 진심을 가지고 대한다. 반드시 자신이 먼저 참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참다운 벗을 얻을 수 있다.


벗 사이는 형제간과 같긴 하지만,
서로 간에 규계하는 도가 있다네.
분분하게 나대는 저 경박한 자들,
어찌 감히 벗의 도를 떠들어대나.

友也如兄弟
箴規道亦存
紛紛輕薄子
豈敢與之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이 지은 「오륜가(五倫歌)」 가운데 붕우의 도에 대해 읊은 시이다. 안방준의 이 시뿐만 아니라, 옛사람들이 벗의 도에 대해 읊은 시를 보면, 그저 벗들이 서로 모여서 어울려 노는 즐거움만을 읊지 않았다. 대부분 벗 사이에 서로 규계해 주는 의리를 담아 읊었다.

  공자(孔子)는, ‘붕우 사이에는 간곡하게 충고하고 자상하게 권면하면서 선(善)을 행하도록 책해야 한다.’ 라고 하여, 그저 사이좋게 지내기만 하면 되는 형제 사이와는 다르다고 하였다. 참다운 벗의 도는 서로 어울려 노는 데 있는 것이 아니요, 잘못된 의리를 과시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에 대해 올바른 도리를 지키고 상대방에 대해 이해해 주면서, 때로는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해 주어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에 있다.

나에게는 참다운 벗이 한 사람쯤은 있는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상대방에 대해 친구랍시고 혹 진심으로 대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는가? 이제까지 혹 잘못 살아온 탓에, 참다운 벗을 사귀지 못한 것은 아닌가? 여러 벗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해설 : 정선용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주요저역서
    -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일빛, 2011
    -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해동역사』, 『잠곡유고』, 『학봉집』, 『청음집』, 『우복집』, 『삼탄집』,『동명집』 등 17종 70여 책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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